혼자 사는 사람들

대단히 잔잔하면서도 외로운 영화다. 17년 전 바람나서 엄마를 버리고 간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가는 진아. 지난달 병으로 고인이 된 엄마는 자신의 재산을 작년에 돌아와 같이 지내던 아버지에게 모두 물려주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알 수 없는 감정을 누르며 하자는대로 변호사가 가져온 서류에 도장을 찍는다.

진아가 출퇴근할때마다 말을 거는 옆집 남자. 그날도 \’성냥으로 불붙이면 담배 연기가 다르다\’며 시덥잖게 말을 건다. 퇴근해서 여느때처럼 TV를 보며 편의점 도시락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데 큰소리가 나며 방이 울린다. 깜짝 놀라지만 별일 없자 하던 일을 계속 하는 진아. 사실은 옆집 남자가 포르노 테입이 가득한 책장에 깔려죽는 소리였다.

복도에 생선 썩는 냄새가 나지만 여전히 그는 진아에게 말을 건다. \’인사 좀 하지\’.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지 49일도 채 지나지 않아 춤연습을 시작하고, 아프다는 둥 어쨌다는 둥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에게 몹시 혐오감을 느낀다.

콜센터 직원인 지나에게 신입이 배정되고, 교육을 맡기 싫어하지만 해야한다니 어쩔 수 없다. 온갖 진상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신입과 진아를 괴롭힌다.

결국 포기하고 마는 신입. 갑자기 혼자서 국수를 삼킬 수 없게된 진아. 콜을 받지만 신입이 말했던 뚜뚜 하는 환청이 들리고 더이상 일을 계속하지 못한다.

그리고 쌓이고 쌓인 온갖 것들이 폭발하고 만다.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찾아갔지만 집엔 없고 전화를 하니 어디 댄스교습소라도 간듯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엄마한테, 나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울면서 소리지르는 진아. 밤이 될때까지 전신주 아래 웅크리고 있던 진아는 조금씩 평정을 찾아간다.

새로 이사온 옆집 남자는 전단지를 만들어 고독사를 한 전 세입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고, 그 모습을 복도에서 바라보던 진아는 죽은 남자가 다시 나타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다.

진아는 신입에게 전화해 정식으로 이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고, 만나서 반가웠다고 못챙겨줘서 미안하다고 말한다. 조금이나마 응어리가 풀리는 신입. 아주 오랜시간 쌓여온 응어리가 아주 조금씩 녹기 시작하는 진아.

옆집에 가서 제사다 뭐다 문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고 있는 진아. 옆집 남자가 나와서 뭘 보라고 한다.

성냥으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후 내뿜는 옆집 남자. \’봤어요? 봤어요? 정말 달라요\’

휴직을 하고, 팀장에게 언제 밥을 같이 먹자고 말해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아버지에게 전화가 온다. 아버지라고 부르는 진아. 그냥 이 정도로, 이 정도로 지내자는 진아.

그제서야 엄마라고 적힌 연락처를 아버지로 수정하고, 조금씩 주변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진아.

  1. 잔잔하면서도 참 외로운 영화.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준다.
  2. 깊게 켜켜이 쌓인 상처는 대체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그녀의 닫힌 문을 여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3. 너무 쌓아두는 건 좋지 않다. 어떻게든 풀어야. 가령,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고 나서부터 오히려 탈출구를 찾아가는 진아.
  4. 약간의 남성 혐오가 저변에 깔려있다. 바람을 피고 쭉빵 클럽을 다니고 등등 정상적인 남자가 거의 없다. 죽는 것조차 포르노 필름에 깔려죽도록 할 필요가 있었을까? 감독 스스로도 자기의 혐오 감정을 좀 적절하게 해소할 필요가 있을 듯
  5. 많은 미혼 남녀와 고독사의 일들이 정말 남의 일이 아니다. 진아처럼 미인은 많지 않고, 새로 이사온 옆집 남자가 짠 하고 나타나 손을 내밀어주는 건 기적과도 같은 일.
  6.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고통속에서 살아간다. 결국 자기의 상처와 자신의 고독은 본인의 손으로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법이다.
  7. 아빠처럼 새로 교회를 가든, 댄스를 배우든, 엄마처럼 바람나서 집나갔다가 15년만에 돌아온 남편에게 전재산을 물려주든, 새로운 옆집 남자처럼 조기 축구회를 다니든, 전 세입자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든, 신입처럼 타임머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고객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든.
  8. 남자들은 대단히 전형적인데, 여자들이 자신을 지키거나, 행복을 찾거나, 이익을 취하는 과정이 대단히 극단적이다. 신입이 그만두자 신입이 두고간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훔쳐가는 동료들의 모습도 마찬가지. 역시 그런 극단적인 인식은 감독 스스로 극복해야 할 문제.
  9. 간단한 인생 법칙. 밥 같이 먹자면 같이 먹도록 하자. 언제까지 밥먹자고 조르지 않는다. 누가 인사하면 인사를 받아주도록 하자. 우리 인간은 몹시 허약한 보호막 아래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을뿐. 법적 권리는 쉽게 포기하지 말자. 유언을 그렇게 했어도 유류분은 무조건 챙겨야지 바보소리 안듣는다.

꽤 깊은 울림이 있는 영화. 얼떨결에 클릭했다가 넋놓고 재미있게 봤다.

영화를 배우기 시작할 때 멋있어 보이는 것을 경계했다. 어떤 명제를 내리고 나면 갇혀버릴 것만 같았다. 배울 것이 많은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작품을 본다. 나의 베스트는 \”환상의 빛\”이다. 확실히 와 닿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홍성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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